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날드 쿠만 (문단 편집) === [[발렌시아 CF]] === 2007년 10월 당시 발렌시아의 감독이었던 [[키케 산체스 플로레스]]가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그 자리를 메우러 스페인으로 가게 되었다. 이때까지만 해도 팬들은 이 선택이 21세기 발렌시아의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로 기록됨과 동시에 쿠만 자신에게도 엄청난 오점을 남기게 만든 행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의 취임을 환영했고 쿠만도 역시 발렌시아와의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. 그리고 쿠만은 부임하자마자 팀의 핵심선수이자 팀의 주장이던 [[다비드 알벨다]]와 주전 수문장 [[산티아고 카니사레스]], 중원의 핵 [[미겔 앙헬 앙굴로]]를 팀 개혁의 일환이라며 내쳤다. 쿠만 입장에서는 당시 어수선했던 팀 분위기를 바로잡고자 했던 일이었겠으나,[* 참고로 당시 발렌시아는 알벨다와 카니사레스 등의 노장 선수들이 주축이 된 선수파와 당시 팀의 단장이었던 아메데오 카르보니, 당시 팀의 회장이었던 후안 솔레르 등의 권력 다툼이 치열했고, 그 결과 평소 카르보니, 솔레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가 사임하기에 이른다.] 이에 충격받은 카니사레스가 시즌 종료 후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으며,[* 비록 당시 카니사레스는 38세의 노장이었으나 여전히 리그 톱클래스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으며, 무엇보다도 팀의 상징적인 선수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쿠만에 대한 비난이 더욱 거셌다. 이 후에 [[에드윈 반 데 사르]]가 40이 넘어서도 그 기량을 그대로 유지한 것. 그리고 [[지안루이지 부폰]]이 현재까지도 여전히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봐선 골키퍼에게 38이란 나이는 절대 퇴물 취급할 나이는 아니다.] 알벨다 또한 은퇴까지 고려했다가 다른 팀을 알아보기도 했다. 또 앙굴로가 쿠만이 떠난 2009년 이적했다가 곧바로 은퇴한 것을 보면 발렌시아에서 만든 흑역사의 여파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. ||[[파일:external/estaticos01.elmundo.es/1208845468_0.jpg]]||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대변해준 알벨다의 눈물 짤. 이 짤은 쿠만의 막장 행보를 여실히 드러내게 만든 짤이 되었다. 더욱이 팀내 차기 [[레전드]]로 칭송받던 알벨다의 방출소식에 발렌시아 서포터는 즉각 반발함은 물론이요 알벨다의 소송으로 알벨다의 옹호파와 쿠만의 옹호파로 나뉘어 팀내 파벌이 형성되는 등 일이 더욱 커져만 갔고, 게다가 이적 의사를 밝힌 알벨다의 바이아웃을 터무니없이 높게 부르는 등 더러운 방식으로 알벨다를 주저앉혔다. ~~ 2020년 행보는 떡잎이 있었던 것인가 ~~ 그 후 팀의 양쪽 윙을 담당했던 [[비센테 로드리게스]]와 [[호아킨 산체스]]의 포지션을 맞바꾸어 출전시키기도 하였고, 특히 호아킨의 경우에는 원톱 기용까지 시키는 기형적인 전술을 펼쳤으며, 공격수인 [[하비에르 아리스멘디]]를 '''왼쪽 윙백'''으로 기용하는[* 당연히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여담으로 한국에서도 과거 조광래가 스트라이커인 [[정조국]]을 풀백으로 기용했다 실패했던 적이 있다.] 이해하기 힘든 선수 기용을 선보였다. 이후 호아킨이 부진에 빠지자 '''30유로짜리 선수'''라며 공식석상에서 혹평을 하는 등 기행을 일삼았고, 결국 팀은 최악의 부진을 계속하다 시즌 막바지에 경질되고 만다. 결국 프리메라리가 내에서 수위에 꼽히는 전력을 보유한 발렌시아는 초반 부진을 만회하기는 커녕 오히려 끝없는 부진에 빠져 2007-08 시즌을 10위로 마감하게 되었다. 그나마도 쿠만이 계속 있었으면 정말 강등까지 걱정해야할 판이었다. 쿠만 경질 후 임시 감독이 그나마 팀을 잘 추스려서 겨우겨우 '''10위나''' 올린 것. 발렌시아의 명성에 10위라는 성적이 눈에 찰 리가 없지만 그 당시에는 10위 한 것도 대단했다. 그 정도로 팀의 부진이 심했다는 것.[* 여담으로 당시 발렌시아는 신예 [[다비드 실바]], [[후안 마타]] 등을 발굴해내어 장미빛 미래가 예견되었던 만큼 이러한 부진이 더욱 뼈아팠다.] 다만 경질되기 직전 팀에 [[코파 델 레이]] 우승컵을 안겨주면서 팀이 최악의 부진 속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.[* 참고로 당시 발렌시아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부진에 시달렸던 바르셀로나는 결국 무관에 그쳤기 때문에 일부 팬들은 바르셀로나보다 더 좋은 시즌을 보냈다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.] 그리고 이걸 수습한 사람은 [[우나이 에메리]]. 이 당시의 맹활약으로 쿠만은 발렌시아 [[팬덤]]에서 '''[[볼드모트|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그 사람]]'''으로 등극하기에 이르렀으며, 심지어 [[FC 바르셀로나|바르사]]의 첩자라 불리는 등 온갖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려 이전까지의 모든 활약을 모두 허공으로 날린 셈이 되었다. 더욱이 쿠만이 카니사레스의 대체로 기용한 골키퍼 [[티모 힐데브란트]]는 발렌시아 이적 이후 말 그대로 폭망했다.[* 다만 힐데브란트를 발렌시아로 데려온 장본인은 당시 단장이었던 카르보니였다.] 다만 겨울 이적시장에서 팀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를 찾던 중 신예 미드필더 [[에베르 바네가]]를 발견하고 팀에 영입한 뒤 경험치를 쌓아놓은 것은 그나마 업적으로 꼽힌다.[* 비록 바네가가 당시 주목받는 유망주이긴 했으나, 다비드 알벨다와 루벤 바라하, 미겔 앙헬 앙굴로로 이어지는 중원 라인에서 꾸준한 출전을 하기는 힘들었다. 하지만 알벨다와 미겔 앙굴로가 벤치로 밀려 주전으로 나올 수 있었다.] 다만 이 당시 발렌시아에서의 깽판은 로날드 쿠만보다도 당시 회장인 솔레르에게 화살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. 연봉상한선을 만들어 베테랑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고 잘하고 있던 키케 플로레스 감독을 갑자기 짤라버린 사람도 솔레르이기 때문이다. 그리고 2016년 들어서는 [[게리 네빌|쿠만보다 더한 감독]]이 나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